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쿠도 시즈카 (문단 편집) == 음악 관련 ==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youtube(5DgVctYMkjU, height=220)]}}} || || '''대표곡 '[[무언・응・・・요염해|{{{#ffffff MUGO・ん... 色っぽい}}}]]'''' || 1990년대 데뷔한 우리나라의 가수인 [[강수지]]가 그녀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유명하다. 쿠도 시즈카의 긴 생머리와 청순한 컨셉을 모토로 한 듯 하나 음악적인 노선은 전혀 다르다. 쿠도는 울 듯한 일자눈썹의 청순한 외모를 밀긴 했지만, 무대 위에서 추구하는 건 청순함이 아니었으며 허스키한 목소리에 멋있는 이미지의 아이돌이었다. 당시 아이돌 4대 천왕이긴 했지만, 일반적인 80년대 후반 일본 아이돌의 노선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. 한마디로 자신의 스타일을 매력으로 잘 활용한 아이돌. 기존/동 시대 여성 아이돌들이 쇼와 시대의 일반적인 가요곡([[https://ja.wikipedia.org/wiki/%E6%AD%8C%E8%AC%A1%E6%9B%B2|歌謡曲]])을 불렀다면, 시즈카의 음악은 전속 작곡가 고토 츠구토시(밴드 베이시스트 출신)의 영향으로 인해 현지화된 일본 락([[https://ja.wikipedia.org/wiki/%E6%AD%8C%E8%AC%A1%E6%9B%B2|歌謡ロック]]) 계열이었고 실제 창법([[벨팅]])도 전혀 여성 아이돌스럽지 않은 락커에 가깝다. 고토 츠구토시[* [[오냥코클럽]]의 노래를 다수 작곡했으며, 쿠도 시즈카가 존경하는 [[나카지마 미유키]]와 협업/편곡도 다수 진행한 적이 있다.]는 본인 음악이 일반 여성 아이돌이 부르기에는 너무 강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고[[https://www.ntvm.co.jp/interview/archives/10.html|#]], 이런 본인의 곡을 소화 가능한 쿠도 시즈카를 오냥코 클럽 내에서 인지도가 높지 않던 후기 멤버임에도 ~~유닛 우시로가미히카레타이에서 인지도가 급상승하긴 했지만~~ 소속사와 함께 작정하고 밀었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. 데뷔 싱글 [[금단의 텔레파시|금단의 텔레파시]]나 첫 앨범의 첫 곡 [[ミステリアス(쿠도 시즈카)#s-3.1|슬픔의 이방인]] 등을 들어보면 기타/베이스/드럼/키보드의 파워가 너무 강해[* 일본에서 인기있던 멜로디/키보드를 중시하는 [[파워메탈]]에 가깝다.] 쿠도 시즈카가 아닌 일반 여성 아이돌의 음색/성량으로는 보컬이 묻힐 수 밖에 없다. 발라드 곡들도 대부분 락 발라드였으며, 실제 낮은 저음까지 강하게 꾹꾹 눌러 부르는 것을 보면 전설적인 락 보컬 [[로니 제임스 디오|디오]]의 창법/음색이 연상된다. 솔로 데뷔 초기(87~88년)에는 음정이 불안한 면이 있었지만[* [[https://www.bilibili.com/video/BV1qS4y1e7oH|88 콘서트]]], 88년 말 발매한 싱글 [[하룻밤의 사랑]]즈음부터 보컬/창법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[[나카모리 아키나]]의 뒤를 잇는 [[쇼와 시대]]의 마지막 여성 톱아이돌[* [[가희#여자 가수|가희(歌姬)]] - 가창력과 인기를 겸비한 거물 여가수]로서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.[* [[https://www.bilibili.com/video/BV1nY4y1h7Ua|89]] [[https://www.bilibili.com/video/BV1yv4y1w7R1|90]] [[https://www.bilibili.com/video/BV1qS4y1e7oH|91 콘서트]]][* 실제로 90년 11월 발매한 싱글 모음 베스트 앨범 unlimited에서 [[하룻밤의 사랑]] 이전의 다섯 싱글곡은 본인도 활동 시에는 뭔가 아쉬웠는지 리메이크하여 수록했다.] 아이돌로서 최정점을 찍은 시기는 88년 중순([[FU-JI-TSU]]) 부터 91년 말([[메타모르포제 (쿠도 시즈카)|메타모르포제]]) --길게 봐도 93년 초([[통곡]])-- 정도로 [[마츠다 세이코]], [[나카모리 아키나]]에 비해서는 기간이 짧은 편이다.[* 참고로 91년을 [[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|일본 거품경제]]의 마지막으로 보는데, 이는 시즈카의 전성기 시점과 거의 일치한다. ~~멘탈이 산산조각나는 불황의 시기에는 다른 음악이 필요했겠지. [[기무라 타쿠야|그 분]]이 있던 [[SMAP|그룹]]의 [[世界に一つだけの花|이런 노래]] 같은(...).~~] 92년 경부터는 저음을 좀 더 강조하는 다른 패턴의 창법으로 변경한다.[* [[https://www.bilibili.com/video/BV1gT4y1e7uE|92]] [[https://www.bilibili.com/video/BV1X5411D7Wo|93 콘서트]]] 노래할 때의 목소리와 평소 때의 목소리에 상당한 [[갭]]이 있다. 노래톤은 중저음톤이지만 말할때는 몇 옥타브 올라간 듯한 매우 애교있고 간드러진 목소리라서 괴리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. 히트곡 중에서 국내에 알려진 '[[무언・응・・・요염해]]' 때문에 원래 노래톤도 비음작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나, 이런 창법의 노래는 커리어 중 소수에 해당하고 실제로는 오냥코 클럽 시절부터 허스키한 톤을 고수해왔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